도시화로 인한 새로운 인간과 사회의 형성
도시화로 인한 새로운 인간과 사회의 형성
근대도시공간의 원형적 요소들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에서 어떻게 하나하나씩 만들어져서 지금 현재의 우리 도시공간을 구성하고 있는가? 이런 내용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소개를 드렸습니다만, 이제는 과연 이러한 현대 도시 형성과정에서 인간은 어떻게 바뀌었고 사회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앞선 내용에서 제일 마지막에 제가 뉴욕의 초거대 도시화 혹은 어마어마한 뉴욕의 도시개발을 선도한 인물로 로버트 모제스 얘기를 했는데요. 이 로버트 모제스식의 도시개발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비판을 한 인물이 있습니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
제인 제이콥스라는 여성인데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라는 대표적인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이 사람은 단순히 연구자가 아니라 모제스식의 개발주의에 맞서서 도시에서 진정 지켜야 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시민들을 계몽시키고 도시정부에 맞서서 투쟁을 했던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인 제이콥스가 얘기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기본적으로 현대 도시가 앞서도 제가 쭉 주로 설명드렸습니다만 이게 천재적인 건축가들, 엄청난 도시설계가들이 나름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도시 혹은 기하학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도시를 얘기하고, 그런 것들이 결국 실현되는 방식이라는 것이 권력자가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기 위한 것, 혹은 사람들이 봐서 현혹될 수 있는 도시 스펙터클을 만드는 것, 혹은 더 궁극적으로 도시개발을 통해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도시개발업자들에게 돈이 되는 사업을 중심으로 해서 이 개발들이 진행되어 왔다는 거죠. 사실 도시에서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행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고, 오히려 도시가 비록 남루하고 소박할지라도 도시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싶은 사람들의 친밀성이 파괴되지 않고 그 마을 공동체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도시의 생명력을 위해서는 혹은 도시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혹은 도시의 윤택하고 생활을 위해서는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겉보기에 엄청나게 큰 도시개발, 높은 빌딩, 큰 대로, 대단히 번쩍번쩍한 랜드마크가 들어서는 것보다는 될 수 있으면 도시의 오래된 조직들을 파괴하지 않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끔 서포트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게 제인 제이콥스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미국식 개발주의에 대한 비판, 결국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현대 도시를 살아가면서 도시민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급속한 도시화를 한 한국 사회
즉, 다시 말해서 한국 사회도 그런 초대형 개발에 의한 급속한 도시화를 경험한 아주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되는데요. 그러면서 결국 우리는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이 없고,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동네에 살면서 그 동네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는 이런 도시사회에 살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이것을 미국의 사회학자인 데이비드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lonely crowd)'라고 자신의 유명한 책에서 표현을 했는데요. 그러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도시에서 조밀하게 모여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군중 속에서 개개인은 오히려 더 심각한 고독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죠. 사실 이것은 일종의 도시민이 농촌을 떠나온 이후에 농촌 내지는 고향 마을에 대해서 느끼는 노스탤지어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원형은 아주 오래전부터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수일과 심순애」라고 우리한테 잘 알려져 있는 작품에 보면, 이수일이 심순애에게 하는 유명한 말이 있죠.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란 말이냐?” 가난한 심순애가 결국은 김중배라는, 그러니까 「이수일과 심순애」가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이수일이 도시로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난 사이에 고향마을의 심순애가 결국은 자기 집안의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서 김중배라는 돈 많은 집안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죠. 이게 일종의 돈에 의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배신이 발생하는 건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원작은 1913년에 나온 「장한몽」이라는 신소설이고요. 사실 이 신소설 「장한몽」도 원래 원작은 오자키 고요라는 일본 사람이 쓴 「금색 야차」라는 소설을 번안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본의 근대화 초기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메이지 시기 도시화에서나 혹은 한국의 개항 이후에 맞이하게 된 새로운 도시적인 사회에서나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인간이 과거의 의리, 믿음, 인간적인 관계를 떠나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출세하거나 혹은 금전적 이해관계를 위해 그런 것들을 벗어던질 수밖에 없는 아주 무정한 세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데요. 제가 같은 맥락의 얘기를 1992년에 나온 음악으로 알고 있는데, 신해철 씨가 작곡한 '도시인'이라는 노래를 한번 들어보시면 같은 내용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사에서 이런 내용이 있죠.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손을 내밀고 악수하지만, 가슴속에는 모두 다른 마음을 가지고 각자 걸어가고 있고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이게 데이비드 리즈먼이 얘기한 고독한 군중으로서의 현대 도시인들 내면세계를 아주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 가사죠. 신해철 씨가 1980년대 말, 90년대 초에 서울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이 노래뿐만이 아니라 여러 노래들 속에서, 당시의 작품 속에서 녹여내고 있는데요. 한번 감상해보시면 굉장히 비슷한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